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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자 혼자 이탈리아 여행 하기 본문
지난 가을 나는 혼자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기본적으로 나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익숙하고, 혼자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혼자하는 여행은 겁이 좀 났었다. 안전에 대한 걱정부터, 일정에 대한 걱정까지.
여행 시작 전, 먼저 혼자 하는 여행이 나에게 맞을까를 확인해보기 위해 예행연습 삼아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번은 경주로, 다른 한번은 대만으로 향했다. 이 두번의 여행으로 나 스스로 여행을 잘 꾸려갈 수 있는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외롭다거나, 무섭지는 않은지를 테스트했다. 결과는 별로 나쁘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여행을 잘 꾸려갔고,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아둥바둥 대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시선과 강박에서 자유로웠고, 여행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이탈리아 여행!
아무리 예행연습을 했어도 걱정은 되었는데, 막상 여행 다니면서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에 만족만족 대만족이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만족한 것은 다른 사람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가는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거리끼지 않고 그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도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거리낌 없이 스킵하고, 피곤하면 숙소에 들어가고, 아침일찍 눈을 뜨면 눈을 뜨는대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도 조금은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배려해야 하는데 혼자 하는 여행 동안은 오로지 나 자신만 배려하면 되었다.
또한, 혼자 여행을 해보니, 동행이 있을 때보다 그 여행지를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가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나와 같이 혼자 다니는 여행자들과 그때그때 동행을 하기도 했었는데, 동행과 함께 한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동행이고, 혼자한 여행 후에 남는 것은 그 여행지의 모습과 그 여행지에 대한 나의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동행이 있을 때는 아름다운 호숫가 산책을 하며, 호숫가보다는 같이 대화하는 동행에 조금 더 집중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한다면, 정말 그 곳의 공기, 바람소리, 말소리, 냄새, 사람들 등 모든 나의 감각기관을 오롯이 여행지에 열어두게 되는 것 같다.
또 하나, 둘이 있을 때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밀라노의 성당에서 만난 언니, 피렌체의 레스토랑에서 만난 친구, 나폴리의 호스텔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 피렌체의 호스텔 세탁실에서 만나 수다떨던 미국인 친구, 토스카나의 식당에서 만난 호탕했던 브라질 아줌마, 한국인 입양아를 아들로 두었다는 베네치아에서 만난 미국인 부부, 나폴리의 지하철에서 나에게 지하철표를 주던 이름 모를 나폴리 청년, 아찔한 아말피 해안의 시타버스 안에서 만난 이탈리안 친구, 왠지 조금은 무서운 늦은 저녁 사철안에서 말은 안통해도 따뜻한 눈빛으로 내 무서움을 달래주던 이탈리안 아줌마 등등. 그냥 작게 지나간 인연부터 하루를 같이 보낸 사람들까지 나의 동행과 함께일 때보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여행이 다른 때보다 더 풍요로웠다고 느꼈는데 아마도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던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여행을 가기 전 가장 많이 걱정했던 치안에 대해서는 혼자 가도, 둘이 가도 위험한 시간에, 위험한 곳에 간다면 위험한 건 마찬가지이고, 그런 것을 주의한다면 충분히 안전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탈리아가 치안이 좋지 않다는 것은 소매치기 때문인데, 나는 사실 소매치기가 많은 것은 치안이 좋지 않은 걸로 치지 않는다. 특히 로마와 같은 관광지는 소매치기는 많지만, 강력범죄 등과 같이 우리 몸을 상하게 하는 범죄율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낮다고 한다. 또한, 실제로 여행을 해보면, 내가 가는 곳은 대부분 여행지이므로 경찰과 여행객이 항상 바글바글하고, 한국사람도 많으며, 한적한 곳에 가더라도 따뜻한 주민들이 더 많았다. 사실 몇군데 좀 으슥하거나 혼자 있기 무서운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늦은 저녁 도착한 밀라노의 중앙역은 노숙자들로 분위기가 좀 좋지 않았고, 로마의 떼르미니역 근처도 밤에는 부랑자들이 많았고, 소렌토와 나폴리를 연결하는 늦은 저녁 사철은 조금 할렘 분위기가 났다. 그래서, 밀라노의 중앙역에서는 역에서 최대한 가까운 호텔을 잡아서 얼른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로마의 떼르미니 역 근처는 워낙 유명한 곳이니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고 돌아다녔다. 역근처가 으슥하긴 하지만, 역근처도 옆으로 조금만 돌아나가면 전혀 으슥하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 서울역에 노숙자들이 많아서 무서워보이지만, 사실은 뭐 그렇게 못돌아다닐 정도는 아닌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다만 우리는 낯선 여행자이므로 조금 더 조심은 해야하겠지만. 또한 소렌토에서 나폴리로 향하는 저녁 사철에서는 껄렁껄렁한 이탈리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듯한 이탈리아 청년과 아주머니 앞에 앉아 두 사람과 친해지기를 시도했다. 일단 아주머니의 맞은 편에 앉아서, 아말피에서 산 레몬사탕을 아주머니에게 건냈다. 아주머니도 검의 머리의 외국인 여자가 신기했던지 알아듣지 못할 이태리어로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 주었고, 옆의 이태리 청년은 그 광경을 호기심 어리게 구경했으며, 나중에는 서로 알아듣지 못하니 대화를 오래 나누지는 못했지만, 아줌마와 그 청년은 내릴 때까지 나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주며, 내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었다. 혹시라도 사철안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사람들이 도와주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단 몇분이지만 그 사철안에 나의 동행이 잠시 생겼던거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여행 갈때 또 두려운 것 중 하나는 혼자 밥먹기.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혼자 밥을 잘 먹으므로 이런건 걱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급 레스토랑도 들어가서 그냥 먹는다. 뭐 어떤가. 나는 배가 고프니 밥을 먹을 뿐이다. 게다가, 혼자서는 메뉴선택도 더 자유롭다. 어제 낮에 마마안젤라스에서 먹은 라자냐가 맛있으면, 저녁에도 그 곳에 가서 라자냐를 먹고, 그래도 맛있으면 그 다음날도 가서 라자냐를 먹으면 된다. 다른 메뉴는 또 다른 날 먹어보면 되는거니까. 그냥 나는 그 때 가장 내가 행복한 일을 하면 되는 거다.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의 걱정은 외로움이 아닌가 싶다. 나는 비교적 2주일 정도의 짧은 시간 여행했으므로 외로움이 올 틈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 정말 하루종일 나 혼자인 시간은 나는 단 하루도 없었다. 짧게 짧게라도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혼자이고,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가 계속 반복되었다.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으면 만나면 된다. 일상에서는 이럴 수 없지만, 이건 여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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